모네의 초기 정원과 초원의 꿈에 대하여

프랑스 인상주의 화풍을 창시한 클로드 모네 Claude Oscar Monet (1840-1926)는 “그림과 정원”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고흐나 고갱처럼 방황하지 않고 처음부터 풍경화가가 되기를 원했고 풍경화가가 되었다.  마치 직장인들이 출퇴근 하듯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 아틀리에 혹은 야외로 출근하여 그림을 그리고 해가 떨어지면 퇴근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한 고지식한 인간이기도 했다. 그가 남겨놓은 엄청난 숫자의 풍경과 정원 그림은 동시에 19세기 말 20세기 초, 정원 개념 변천사에 대한 기록이기도 했다.

그의 그림을 정원사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대략 세 개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 전형적인 19세기 말 시민정원을 배경으로 한 그림. ~1870년까지
  2. 야외로 나가 전원풍경을 그린 그림. 야생화 초원을 즐겨 그렸다. 이 시기에도 정원그림이 많이 탄생했으나 정원이 ‘와일드’ 해져 감을 알 수 있다. ~ 1880년경까지
  3. 지베르니 정원 시대. 1886년부터. 수련 연작의 시기. 수련그림 외에도 정원그림을 더러 그렸지만 색상에 있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수련 그림이 점점 더 화사해지는 반면 정원 그림은 어두워진다. 이 시기에 눈병이 심해졌다.

모네에게 정원을 묻다 1은 지베르니 이전의 시기를 다룬다. 즉 위의 시기에서 1과 2에 해당한다. 1886년, 모네가 지베르니에 집을 사서 그 유명한 모네 정원을 조성하기 이전의 일을 다룬다. 모네는 지베르니 이전에도 늘 정원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 정원과 함께한 인생이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다만 지베르니 정원에 가장 오래 살았으며 여기서 수련 연작이 탄생했고, 현재까지 남아 관광지가 되었으므로 널리 알려졌을 뿐이다.

지베르니 이전에 탄생한 그림들 역시 상당히 흥미롭다. 빨간 제라늄으로 상징되는 시민 정원그림을 그리다가 1870년 영국 체류 후 그림의 주제에 변화가 온 것이다. 이제 그는 정원에서만 그림을 그리지 않고 야외로 나가 전원의 야생화 풀밭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영국에서 윌리엄 로빈슨 William Robinson으로부터 비롯된 자연정원의 물결이 거세게 일었던 때였다. 다만 프랑스의 정원에는 아직 야생화 정원이 도달하지 않았으므로 야외로 나가야 했을 것이다. 그의 전속 모델과 같았던 아내 까미유도 파라솔을 들고 야외에서산책해야 했으며 흰 드레스를 입은 채 야생화 풀밭에 누워 책도 읽어야 했다.

물론 그의 야생화 초원에 대한 집착은 ‘빛’을 그리고자 하는 화가적 의도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며 그는 새로운 정원, 즉 와일드 가든에 대한 아이디어를 키우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 1870년경 까지 그린 “시민정원”


2. 1870~1880년 사이의 전원풍경


© 100장면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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