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 아르카디아에도 죽음은 있다

풍경의 발명 2

025 아르카디아에도 죽음은 있다

화가들이 좀 더 빨랐다. 베르길리우스가 노래한 목가적 풍경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17세기에 들어와서 비로소 풍경화를 그렸다. 이렇게 늦게 시작한 된 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일단 기독교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볼 수 있다. 16세기까지 르네상스 이전의 서양미술은 거의 백퍼센트 종교화였다. 풍경을 그려도 풍경이 대상이 아니라 종교화의 배경으로 그렸던 것에 불과했다.

클로드 로랭이나 니콜라 푸생 등 풍경화가의 출현은 사회적 감성이 달라졌음을 말해 준다.

그중 니콜라 푸생이 1637년 화제작을 한 편 그려 발표했다. 그 제목이 문제였다.

“Et in Arcatid Ego”라는 라틴어 제목이었는데 이에 대한 해석으로 많은 인물들이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그러다 마침내 그 뜻이 제대로 해독되기까지. <나는 아르카디아에도 있다>라는 뜻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누구인가?


그림: 니콜라 푸생의 화제작 “나는 아르카디아에도 있다.”
Title: Et in Arcadia Ego, 1637-1638
Current location: Musée du Louvre
Source: The Yorck Project: 10.000 Meisterwerke der Malerei. DVD-ROM, 2002. ISBN 39361222022 . Distributed by DIRECTMEDIA Publishing GmbH. ⇒
PD because of age

©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풍경의 발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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