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 고대서적의 행방을 찾아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다시 되살아나게 하면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고들 한다. 그 말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가 일단 사라졌었다는 뜻이 된다. 중세는 기독교 문화가 지배했던 시대였으므로 고대의 문화가 스러졌음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많던 고대 시인들, 극작가들, 철학자들의 서적들이 사라지게 된 경위도, 그러다가 다시 발견하게 된 경위도 매우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르네상스 정원이야기를 준비하면서 가장 알고자 했던 것이 바로 그거였다.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르네상스에 대한 참고 문헌을 보면 다들 중세 말기에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재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고만 설명하고 있다.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대체 누가 언제 어떻게 고대 문화를 ‘재발견’했다는 말인가. 우선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그는 중세 말기의 이탈리아 시인이며 사가로서 단테, 보카치오와 함께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발판을 마련했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칸초니에레”라는 서정시집은 17세기까지 유럽 서정시의 모본이 되었었다고 한다.  그는 한편 고대 로마서적들을 탐독했으며 특히 키케로의 열렬한 펜이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고대 서적을 읽는 것이 유행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페트라르카가 아닌 밤중에 어떻게 고대 문학과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찾기 어려웠다. 여기 저기 언급되어 있는 그의 전기를 읽어보아도 (위키백과는 물론이고 그의 서한집 초반에 간략하게 생애를 요약해 놓은 것이 있고 르네상스에 대한 여러 참고서적에서도 페트라르카는 빠짐없이 등장한다.) 정작 그가 어떻게 고대문학을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모두들 말을 아끼고 있다. 그 보다는 그의 평생의 연인 라우라에게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물론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나 내 입장에서 보면 라우라를 어떻게 만났는가 보다는 키케로의 서적을 어디서 찾아 읽었는가가 더욱 궁금하다.

이리저리 찾던 중 포기오 브라키올리니 Poggio Bracciolini 라는 이름을 만나게 되었다. 1380년 브라키올리니라는 곳에서 태어나 1459년 피렌체에서 사망한 이태리 인문주의자라는데 독일 등지의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던 중요한 고대 서적을  다수 찾아 내어 이를 정리하고 재구성함으로써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발달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라고 했다. 흥미가 당겼다. 위키백과에 보니 2011년도에 미국의 Stephen Greenblatt라는 작가가 바로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쓴 것이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 횡재한 기분이 든다. 당장 책을 주문했다. 그것이 작년 2015년 9월 초였다. 그런데 아직도 책을 다 읽지 못하고 있다. 알고보니 매우 짜증나는 책이기 때문이다. 명색이 소설인데 소설이 아니라 논문에 가까웠다. 소설이 소설답지 않으면 일단 짜증이 나서 읽지 못하는 습관이 있다. 횡재가 아니라 웬수가 되어 버렸다. 몇 번이나 읽으려고 시도했다가 덮어버렸는지 모른다. 아마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단 고대 서적이 분실된 경위부터 알아보면 어떨까. 그 과정에서 다시 찾게 된 경위도 알게되지 않을까? 인터넷에 “고대서적”이라고 입력해 보았다. 그랬더니 바로 고대서적의 분실이라는 위키백과가 떴다. 얼핏 살펴보아도 그 방면의 전문가가 작성한 논문 수준의 글 같아 보였다. 그 내용을 옮겨보면 이러하다.

고대 서적의 분실에 대하여:

서기 3세기에서 6세기 사이, 즉 고대 후기에 수많은 서적과 문화유산들이 되찾을 수 없이 분실되었다.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고대문학은 사실상 창조된 것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전해진 것은 중세시대에 제작된 필사본의 형태로 남아있으며 원전은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고대서적들이 분실된 원인은 매우 다양하며 아직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은 듯하다.

우선  3세기 유럽이 겪었던 격동의 시기에 많은 서적이 분실되었다. 로마황제들이 기독교를 박해하는 과정에서 초기 기독교 서적이 파괴되었으며 역으로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 비기독교 서적이 파괴되었다. 그 후 민족대이동과 함께 일어난 수많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수많은 서적들이 방화와 파괴의 희생물이 되었다. 고대 문화를 알고 있던 마지막 세대가 사라지면서 고대 문화 역시 서서히 잊혀갔다.

한편  동쪽의 비잔틴 제국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이 멸망할 때까지 고대문학의 전통이 어느 정도 지속되었었다. 예를 들어 9세기에 포티오스라는 귀족이 고대의 서적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으며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읽었다고 한다. 콘스탄티노플에 도서관이 있어 중세 후기까지 고대서적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1450년경 비잔틴 제국이 무너질 때 무사히 서쪽 이태리로 피난 간 학자 들이 일부 고대 문화와 서적들을 전달할 수 있었다.

그 반면 서쪽의 라틴어 권에서는 아주 극소수의 지식층에서만 일부 고대문학의 유산을 보존하고 있었다. 그 중 카시오도르Cassiodor 는 원로원 가문의 후손으로서 남아있는 고대 서적을 수집했다. 그는 554년경  비바리움Vivarium이라는 수도원을 설립하여 서적을 보존하고 필사하는 장소로 삼았다. 이 수도원은 카시오도르의 사후, 583년경에 다시 해체되었으나 그 영향이 라틴어권 전역에 확산되어 수도원마다 도서관이 생기고 서적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Ezra_Codex_Amiantinus.jpg

7세기 말. 성서 필사본 삽도. 중세 초기의 책장이 그려져 있다. 출처: Codex Amiatinus via Wikimedia Commons

그나마 남아있던 적은 분량의 고대서적이 그런대로 유지보존될 수 있던 데에는  아니러니컬하게도 이슬람권에서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다. 이슬람이 점령한 지역, 즉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등지에서 고대 그리스 문화에 대해 큰 관심을 보여 서적을 아랍어로 번역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은 아랍인들이 번역한 덕에 근세에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볼 때 고대 문화가 자취도 없이 완전히 사라졌던 것은 아니며 실낱같이 이어져 오던 것이 중세 말엽 페르라르카 등이 다시 관심을 기울이면서 되살아 났던 것같다. 그럼에도 페트라르카가 키케로의 글을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짐작컨대 키케로와 베르길리우스 등 가장 대표적인 작품들은 꾸준히 읽혔던 것 같다. 중세의 공식언어가 라틴어였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적어도 라틴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키케로 등 문장가의 글이 읽히지 않았을리 없다. 말하자면 키케로의 글은 일부라도 지속적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키케로의 유산이 어떻게 전달되었는지를 살펴보는 편이 옳지 않을지.

아닌 게 아니라 위키백과에 키케로가 후세에 미친 영향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되었다. 그에 따르면 키케로의 글 중 일부가 중세 내내 라틴어 교재로 쓰였다고 한다! 아 드디어. 그러던 것이 13세기 이태리에 휴머니즘의 전조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키케로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층이 늘어났다고 한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가 키케로를 자주 인용했으며 단테 역시 키케로를 자주 인용한데 이어 그의 우정에 대한 대화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철학의 길을 걷게 한 글이라 했다. 비잔틴 제국에서도 키케로야 말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키케로를 다시 부활시킨 것은 역시 페트라르카였다. 1345년 베로나의 돔 도서관에서 필사본을 발견했는데 그 중 분실된 것으로 알려진 키케로의 서신 수백점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다른 글과 달라 서신에선 키케로의 인물됨과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직접 전달된다. 이후 페트라르카는 키케로의 연설문도 발견하는데 이를 계기로 하여 키케로에게 편지를 쓰기까지 했다. 보카치오나 살루타티 Salutati등 문인들도 키케로와 비교되는 것을 최고의 찬사로 여기는 등 키케로의 전성기가 다시 왔던 것같다. 1392년 살루타티가 베로나에서 키케로의 편지를 더 찾아냈으며 포기오 브라키올리니 역시 키케로의 연설문을 발견했다.

더 나아가서 이태리의 인문주의자들, 휴머니스트라는 명칭 자체가 키케로에 기인한다. 키케로의 humanitas 개념을 연구한다고 해서 studia humanitatis 라고 했다.  <현자들이 그들의 사상을 웅변술로 전달할 수 없다면 국가에 아무 보탬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는 데  이를 본 받아 인문주의자들은 사상과 언어의 일체성을 추구했다. 휴머니스트란 본래 대학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는 선생들에게 붙였던 타이틀인데 여기서 유래하여 16세기부터는 학자들이 스스로를 휴머니스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후기


고대 로마 공화정 시대는 정말 매력적인 시대였다. 후세의 눈으로 보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시대를 이해하기 좋은 책이 있다. 딱딱한 학술서가 아닌 흥미진진한 소설. 영국 작가 로버트 해리스의 키케로 3부작이 있다. 완전 강추. 찾아 보니 국내에서도 조영학 님이 번역하고 랜덤하우스 코리아에서 나온 것이 있다.

 임페리움. 로버트 해리스 작, 조영학 역.

 

© 100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