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에스툼의 장미

시인이 던진 세 글자가 얼마나 크고 긴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고대 로마의 시성 베르길리우스가 쓴  농경시 Georgica 중 한 구절이 바로 그 케이스다.  그는 파에스툼의 정원에서 자라는 장미를 칭송했다. 일년에 두 번씩 꽃이 핀다면서. “biferique rosaria Paesti” [1]Vergilius, Georgica, 8장 4절 119행 .  이 세 글자는 이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파에스툼의 장미를 찾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게 했다. 나를 포함하여. 일단 파에스툼에 달려 갈 작정을 했다. 각색의  장미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환상적인 정원을 머리에 그렸다. 백년 간 잠자는 공주의 성을 뒤덮은 그런 장미덩굴도 있을까? 아~ 향기가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참 파에스툼이 어딨더라? 처음 듣는 도시이름이었다. 검색을 시작했다. 검색하는 동안 풍선처럼 부풀어 있던 환상이 조금씩 빠져나감을 느꼈다. 한 때 그리 유명했던 장미 재배지였으니 지금도 장미가 유명한 고장일 것이라 짐작했던 것이 완전이 오산이었다. 파에스툼이라는 도시 자체가 아예 사라지고 없었다. 이 무슨 청천벽력.

파에스툼은 기원전 600년경에 그리스 인들이 이탈리아 서남 해안 나폴리 가까이에 설립한 도시였다. 그 때는 포세이도니아라고 불렀었다. 기원전 274-273년에 로마인들이 정복하여 로마식의 도시로 만들고 이름도 로마식으로 파에스툼이라고 고쳐 불렀다. 황제시대에 이미 조금씩 몰락하기 시작,  9세기에는 사라센이 쳐들어 와 일단 심하게 파괴되었고, 다시 11세기에 노르만 족들이 밀려오면서 완전히 멸망했다. 이 무렵에 자연환경이 변하면서 연안 습지가 밀고 올라와 말라리아가 돌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도시를 버리고 떠나 근처에 있는 높은 산으로 피신하여 그 곳에 카파치오라는 새로운 도시를 지었다.[2]Wikipedi.de/Paestum

이렇게 파에스툼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지고 장미는 전설이 되었다.

파에스툼 고고학 발굴지. 아테나 신전, 포사이돈 신전, 헤라 신전 등의 폐허가 있고 성벽이 잘 보존되어 있다. 출처: V alfano via Wikimedia Commons

1752년 폼페이를 발견하면서 가까이에 있던 파에스툼도 발견되었다.  크게 대서특필되어 물의를 일으켰다. 전설이 되살아 난 것이다. 곧 폼페이와 함께 파에스툼을 찾아가 보는 것이 지식인들 교양여행 프로그램이 되었다. 괴테도 다녀가고 요한 코트프리드 소이메Johann Gottfried Seume라는 무명시인도 다녀갔다. 물론 장미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거대한 신전 세 곳과 성벽, 로마의 원형극장 등이 남아 있었다. 괴테는 그의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파에스툼에 대해 두 단락을 할애했으나 장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3]Goethe 1787.03.23 소이메 역시 ⌈시라쿠스로 가는 길⌋이라는 여행기를 썼다. 그는 괴테와는 달리  전설의 장미 고장에 와서 장미를 하나도 보지 못하고 가는 어처구니 없음에 대해 토로했다. 그는 그 덕에 유명해졌다.

 ” 파에스툼 전체를 한 바퀴 도는 데 두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주교들의 사택과 헐어빠진 음식점 그리고 그 보다 더 낡은 집 한 채가 서 있는 게 전부였다. […] 그런데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장미가 한 그루도 없었다. 주교의 일행들이 장미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그래도 믿기지 않아 사방을 헤매고 다녔다. 정말 없었다. 주교들 정원도 둘러보았다. 거기도 장미는 없었다. 점점 더 열이 나서 자연에 대해 이리 죄를 지어도 되는 가고 외쳤다. 나를 안내해 주던 여관 주인이 미안한 낯으로 말하기를 육년 전만해도 몇 그루 있었는데 외부인들이 와서 다 캐갔다고 한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한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유명했던 장미를 그리 뽑아가게 놔둔단 말인가. 그리고 또 다시 심으면 어디가 덧나나. 그리 퍼부었다. 관광객들이 틀림없이 파에스툼 장미 한 가지를 얻기 위해 높은 값을 지불할 것이라고 했다. 나라도 당장 그리 할 것이라 했다. 그러자 여관 주인의 흐릿하던 눈 빛이 반짝 빛났다. 이 동네가 어찌하여 이리도 깊이 추락한 것일까! 여관 주인에게 장미를 다시 심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만약에 파에스툼에 다시 장미가 자라기 시작한다면 그건 내 공일지도 모른다.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언젠간 결실을 맺을 때가지 파에스툼 사람들을 계속 귀찮게 해 달라고”[4]Seume 1802

소이메의 호소가 결실을 맺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파에스툼에 변화가 오고 있다.  2013년 드디어 파에스툼 신전 주변에 장미를 심은 것이다. 파에스툼 고고학 박물관에서는 장미원 복원을 결정하여 이미 장미를 심었으며 그와 함께  3월 23 부터 10월 31일 까지 장미에 대한 전시회도 열었다.  예로부터 파에스툼의 장미는 관상용보다는 약. 화장품과 향수의 원료로 각광을 받았다고 한다. 전시회는 바로 그런 제품들을 소개할 목적으로 개최된 듯 했다. 한편 고고학 연구 결과에 따라 장미정원도 복원할 계획이라고 하며 한 해에 두번 꽃이 피는 장미를 심을 계획을 세우고 적절한 품종을 선발 중이라고 한다. [5]파에스툼 문화관광부 홈페이지

파에스툼 고고학 박물관에서 2013년도 개최된 장미 전시회 포스터. 출처: Museo Archeologico Nazionale di Paestrum
2013년 파에스툼에 다시 나타 난 장미. 사진: Edward Langley

참고 자료

  • Goethe, Johann Wolfgang (1787): Italienische Reise. Neapel, Kniep, Alla Cava, Paestum
  • Wikipedia.de/Paestum
  • ONLINE, SPIEGEL; Hamburg; Germany (1789;1927): Ländliche Gedichte von Vergil – Text im Projekt Gutenberg, translator Johann Heinrich Voß. Leipzig.  http://gutenberg.spiegel.de/buch/-2622/8
  • Ministero dei beni e delle attvita culturali e del turismo, Paestum: ROSANTICO. Natura, bellezza, gusto, profumi tra Paestum Padula e Velia. http://www.beniculturali.it/mibac/export/MiBAC/sito-MiBAC/Contenuti/MibacUnif/Eventi/visualizza_asset.html_10231532.html
  • Seume, Johann Gottfried (1962): Spaziergang nach Syrakus im Jahre 1802. Koeln.

© 100장면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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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각주
1 Vergilius, Georgica, 8장 4절 119행
2 Wikipedi.de/Paestum
3 Goethe 1787.03.23
4 Seume 1802
5 파에스툼 문화관광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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