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 칼 푀르스터와 이집트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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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에서 왜 쫓겨난 줄 알아?

얼마 전에 독일 동료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네? 칼 푀르스터가 꽃에 대해서만 얘기했냐고요? 혹시 나무에 대해서도 뭔가 얘기한 것이 없는지 궁금하시다고요? 

아~ 물론 있지요. 오래 된 나무에 대해서 쓴 글도 있고 숲에 대해서 쓴 것도 있고요. 그런데 일화가 하나 있기는 한데. 말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답니다. ‘꽃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나무가 정원의 기본이지 ~’ 그래서 제자들이 맨붕에 빠졌었답니다. 

그게 어디 써 있냐고요? 글쎄요. 읽은 지 오래 된 것이라 지금 정확히 얘기할 수 없으니 찾아 보고 알려드릴게요. 내가 어딘가 메모해 둔 것이 있을 겁니다. ”

바로 찾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 봐도 그 인용문을 메모해 둔 것이 없었다. 아마 메모해 두겠다고 생각하고는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짐작가는 곳을 이리저리 뒤적여 보았으나 그런다고 찾아질 리가 없다.

그 동료에게 전화를 넣어 이만저만하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급하냐? 물었더니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그냥 알고 싶어서 물은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야생 숙근초에 열광하다 못해 화단만 바라보고 <정원의 전체>를 놓치는 것 같기에 그 사람들이 신봉하는 칼 푀르스터의 말을 인용하여 그렇게 땅바닥만 내려다 보지 말라고 경고하고 싶어서 그런다고 했다. 칼 푀르스터 같은 대인이라면 틀림없이 전체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라 여긴다고 했다.

물론 그렇다고 대답해 주고 다시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중요하면 본인이 직접 찾아볼 일이지 왜 내게 묻는지 그게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아마도 고정희는 칼 푀르스터에 관한 모든 것을 줄줄이 꿰고 있다고 여긴 모양이다.

나 역시 궁금해서 가능성이 가장 많은 곳부터 틈나는 대로 다시 읽기 시작했다. 확실한 건 칼 푀르스터가 직접 그런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제자 중 한 명이 칼 푀르스터가 그랬다라고 어딘가 썼는데 제자가 워낙 많다보니….

결론을 말하자면 아직 못 찾았다.

그 대신 다른 흥미로운 대목을 만났다. 칼 푀르스터가 파라다이스에 관해 한 말이다.

“그때 에덴 동산에서 왜 사단이 난 줄 알아? 할 일이 없어서 그랬어. 미래의 파라다이스는 일하는 파라다이스여야 해. 정신적 노동, 신체적 노동 구분 없이, 도시 시골 구분없이, 휴식이나 여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일하고 배우는… “ (헤르만 괴리츠, 1970년 칼 푀르스터 추도사 중에서)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뉘앙스는 조금 다르지만 이집트 내세의 정원이 떠 올랐다. 밭 갈고 씨 뿌리며 농사지어 영원히 살아가는 세상….


©100장면으로 읽는 서양 조경사/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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